알리슨씨, 나가서 뛰어 놀자!

기록

2018. 1. 13. 21:42

 찬 바람이 볼을 따갑게 치고 지나가는 날이었다. 새로운 공부를 위해서 블로그를 만들던 중, 문득 티스토리에 블로그가 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맞아, 개미(친구의 별명이다)가 초대장을 보내줘서 만들었던 것 같은데... 당연히 아이디도 비밀번호도 기억이 안나서 새로 찾기를 하고, 로그인을 하니 7년전의 나의 흔적이 바래지도 않고 그대로 남아있었다. 새벽 1시반, 미소지었다가 귀가 뜨거워졌다가 하며, 몇 개 되지 않는 글을 몇 번이고 읽었다. 어린 나를 들여다볼 수 있다는 기쁨, 그리고 이런 나를 잊고 살았던 약간의 서글픔과 함께. 


 그 중 [가을바람과 통닭]이라는 글이 유독 기억에 남았는데, 그 시절의 나는 참 순수했던 것 같다. 토라져있는 나를 위해 엄마가 통닭을 시켜주시고, 남은 것도 너 다 먹어라-라고 하셨다는 내용이었는데, 통닭 한 마리로 얼마나 큰 행복감을 느꼈었던지, 사랑받는 기분에 휩싸였던 그 가을 밤, 충만한 마음으로 글을 올렸던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은 가을 바람이 불 때마다 나는 오늘을 기억하겠지-라는 식이었는데, 나는 지난 시간동안 이 날을 까마득히 잊고 살았던 것 같다. 사실 다시금 떠올려보려해도, 그다지 충격적인 사건은 아니었던 듯, 특별한 장면을 떠올릴 수 없었다. 아마 이 글이 아니었다면, 나는 평생 그 날 느꼈던 감정을 잊고 살았을 거다. 


 그 동안 많은 일이 있었고, 또 둥지를 옮겨 바쁘게 살아왔다. 많은 기록을 했다. 매일의 업무 기록을, 그 날 해야할 일에 대해 기록하고 한 두개의 동그라미를 그려 완료 표시를 하고, 못한 것은 자책하고, 그리고 내가 쓴 돈이 얼마인지 쓰면서 이런 돈쓰는 기계!라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저런 종류의 글은 별로 없었다. 나의 감정에 대한, 나의 하루에 대한 글. 보통은 나중에 보면서 이불을 뻥뻥차게 되는 종류라서일까, 아니면 너무 소소해서일까, 아니면 바빠서_라고 핑계를 댈까. 


 기록은 힘이 있다. 이번만 해도 글을 읽으며 나는 기억도 안나는 그 날 밤을 생생하게 그려볼 수 있다. 지금은 멀어진 나와 대화를 할 수 있다. 만약 지금 시점에 가을 바람과 통닭에 대해서 쓰고자 한다면, 저런 일은 영영 기억이 나질 않아서 쓸 수가 없었을 것이다. 또한 지금 누군가 나에게 통닭을 사준다고 해도, 저만큼의 행복감을 느끼지 못할 확률이 크다. 그렇다면 저 때의 나의 감정은, 울림은 영원히 잊혀졌겠지. 결국 기록하지 않는 것은 퇴색된다는 말이 옳은 것이다.  


 기록, 우연히 찾아낸 짧은 글 하나는 2018년의 나에게 또 다른 감명을 주었고, 잊었던 감정을 일깨워주었다. 내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또는 수명이 언제까지 닿을지 모르지만, 확실한 건 몇 년이 더 지나면 오늘의 평범한 나도 그리운 것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지금은 생생한 하루도, 그 때는 기억조차 나지 않을지 몰라, 그 날을 위해서 나의 생각과 평범한 날들을 담담히 기록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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