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뒤숭숭한 꿈을 꾸고는 찝찝하게 깨어났다.
기상시간은 11시, 헝클어진 머리에 눈꼽도 안 떼고 침대에 망연자실 한동안 앉아있었다.
목표 기상시간은 이미 물건너 갔다. 하루 종일 멍하니 있다가 저녁이 되었다.
벌써 가을이 오는 듯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이같이 기분 좋게 시원한 바람이 불었던 고등학교 시절 어느 하루의 저녁이 생각났다.
딱히 몇 월 몇 일이 생각났다기 보다는 여고 시절에 했던 고민들, 그 때 했던 생각들이 뒤엉켜 떠올랐다.
문득 그 때보다 별로 발전한 게 없다는 생각이 들어 서러워졌다.
저녁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그렇게 누워있는데 엄마가 들어와서 자냐고 물으셨다.
"아니요."
사실 자다가 묻는 소리에 깬거면서 거짓말을 했다.
한참 후에 엄마가 다시 부르셨다.
"통닭 먹어라."
내가 저녁도 안 먹고 할 일도 안하고 시위를 하길래 먹고 힘내라고 시키셨다고 했다. 오늘 한 마디도 안 나누었던 엄마와 꿈 얘기를 하면서 통닭을 먹는데, 죄송스런 마음이 들었다.
니가 통닭먹을 꿈을 꿨나보다, 남은 건 넣어뒀다가 너 혼자 다 먹어라, 고 하시는데 그냥 내가 되게 사랑받고 큰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지금도 넘칠만큼 사랑을 받고 있는데, 조금 일이 틀어졌다고 포기하니 어쩌니 자신을 괴롭히면 안된다는 걸 깨달았다.
참 쌩뚱맞다 마치 남들은 그냥 무덤덤하게 넘어가는 대목에 혼자 형광펜으로 밑줄을 긋고 있는 것 같다. 그래도 오늘 이 순간은 그냥 소소한 이야기 하나로 기억해 두고 싶어서 이 글을 쓴다. 언젠가 슬슬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할 때 오늘 저녁을 떠올리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