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슨씨, 나가서 뛰어 놀자!

"요즘 뱃살도 자꾸 찌고, 허리도 아프고... 무릎도 아프고... 죽겠어요." 

"주임님, 핫요가가 그렇게 살이 잘 빠진다는데, 지금 할인 행사하던데 같이 가볼래요? 둘이 등록하면 뭐 준대요." 



이전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아래로 

1탄 알 수 없는 이끌림 그리고...

2탄 해외에서 요가를



직장인이 되어 거듭되는 야근에 마치면 동료와 야식 먹으며 소주 한 잔 하는 게 낙이었던 나날들. 

그렇게 운동을 좋아했지만 일정이 바쁘니 자꾸 뒷전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술 마실 시간, 웹툰 볼 시간은 있어도 운동할 시간은 없었다. 



20대의 엉망진창의 생활과 식습관을 버텨주던 몸이 드디어 SOS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뱃살이 마구 찌기 시작하고 무릎과 허리, 목이 아파왔다. 머리는 지끈지끈 어찌나 자주 아팠는지 책상 서랍 맨 아랫칸에는 타이레놀, 게보린에 두통약이 항상 들어있었다. 그러던 중 길에서 나눠주는 전단을 보고는 친한 주임님과 같이 등록을 하기로 한 것이다. 3개월을 권유했지만 고민 끝에 그냥 1개월로 하기로 했다. 


요가원 규모는 작았지만, 직장인 밀집 지역이라 그런지 한 수업에 듣는 사람이 엄청 많았다. 매일 2~30명은 오는 것 같았다. 핫요가 전문으로 되어 있지만 비트요가, 힐링요가 등 다양한 요가를 경험할 수 있어서 좋았다. 


첫 수업을 들으며, 깜짝 놀라고 말았다. 예전엔 허리 숙여 발을 잡는 것이 너무 쉬운 일이었는데, 너무 어렵고 무릎 뒤며 허리에 끊어질 듯한 통증이 있는 것이다. 이게 이렇게 어려운 자세였나? 옆을 보니 같이 간 주임님이 아직 구부정하게 서있었다. 


"이렇게 하래요. 주임님,(속삭임)"

"저 지금 다 한거예요..."


땀을 뻘뻘 흘리면서, 선생님의 큐에 깜짝깜짝 놀라면서 한시간 수업이 금세 끝났다. 둘이 술잔 들 힘조차 없이 절여진 배추꼴을 하고는 각자 집으로 들어갔다. 다음 날은 극심한 근육통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도 이제 건강하게 살거야!




점심 식사를 하러 가는데 에베레스트 등반이라도 하고 온 사람들처럼 엉거주춤하게 계단을 내려가는 우리를 비웃으며 사람들이 물었다. 


"어제 요가 가러간다고 하지 않았어요...? 뭐 스트레칭 그런 거 아니었어?" 



퇴근 시간이 되자 눈치 게임이었다. 결국 누구도 먼저 가지말자는 소리를 못하고 터덜터덜 요가원으로 향했다. 평소보다 말수가 적었다. 


그 날은 비트 요가였는데, 음악에 맞춰서 정해진 동작들을 순서대로 하는 요가였다. 인도 풍인지 모를 오묘한 멜로디에 쿵쿵 비트가 울리는데 요가원에 불금이 있다면 비트요가를 하는 날이겠구나 싶을 정도로 신이 나고, 전신의 근육을 고르게 사용해서 코어와 근력을 키워주는 동작과 골반을 맞춰주는 동작들로 이루어져있다. 너무너무 힘든데 재밌었다. 옆을 보니 주임님도 나처럼 다 틀리고 있어서 서로 보고 웃으면서 계속 따라했다. 


수업을 듣고 나니 땀에 흠뻑 젖었는데 나름 근육을 쓴 느낌도 들고, 춤을 실컷 춘 후처럼 여운이 남은 채로 요가원을 나섰다. 


"진짜 너무 재밌었어요."

"그런데 선생님이 엄청 예쁘시지 않아요?" 


비트 요가 선생님은 전형적으로도 미인에 가까웠지만 전체적으로 밝고 건강하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풍기는 분이었다.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 수업 시간에 멘트만으로도 힘을 불어넣어주는 사람. 그리고 수업 시간에 정렬을 설명하면서 보여주신 복근이, 캬~! 열심히 다니면 우리도 저렇게 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실제로 선생님은 수업 중에 심하사나(Simhasana 사자자세 - 혀를 헤~하고 최대한 내밀고 눈을 까뒤집어서 고개를 들지 않고 완전히 천장을 보는 자세, 안면 근육을 풀어주고 자신감을 높혀준다고 한다)를 시연했는데도 우리는 예쁘다고 감탄을 했다. 결국 우리의 콩깍지는 벗겨지지 않았다.



사자자세를 취하는 아헹가 선생님! 포효가 들리는 듯 하다.




금요일은 핫요가였다.

어제와는 또 다른 선생님이셨는데, 핫요가는 전반적으로 실내 온도를 인도의 환경과 유사한 38도씨의 스튜디오에서 진행하는 요가로 비크람 요가(Bikram yoga)로도 알려져 있다. 몸이 따뜻해져서 유연성이 높아지고 근육이 이완되어 부상의 위험이 상대적으로 낮을 수 있다. 또한 땀을 많이 흘려 노폐물과 독소를 빼줘서 다이어트 요가로도 유명하기도 했다. 


그런데 유연성이 해결되니 이제는 균형이 문제였다. 

비크람 요가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반달 자세(하프문 포즈-양손을 머리 위에서 맞잡고 권총 모양을 하고 허리 반달처럼 휘는 자세), 의자 자세(어컬드 포즈-양팔을 꼬아 손바닥을 붙이고, 양 다리도 꼬아서 낮게 앉은 자세), 나무 자세(트리포즈-한쪽 무릎을 접어 발바닥을 반대 다리 허벅지 안쪽에 붙이고 양손은 합장하여 머리위로 올려 균형을 잡는 한 발 서기 자세) 등등등... 한 자세에서 3초도 버티기 힘들었다. 휘청휘청거리다가 한시간이 끝나니 허탈했다. 


'오늘 나는 도대체 뭘한거지?' 



바닥에 단단히 뿌리내린 나무가 되어야 하는데.




마치고 금요일 기념으로 주임님과 소주도 한 잔 했는데, 그래도 나름 땀을 흘려서 그런지 술이 위장을 타고 흡수되는 느낌이었다. 안주도 죄책감이 덜어져서 그런지 몇 점 더 집어먹었다. 운동하기 전 상태고 그대로 원상복구 시키고는 집으로 돌아갔다. 


주말 동안에는 푹 쉬었다. 



대망의 월요일, 2주차에는 또 새로운 선생님의 수업을 들을 수 있었는데 힐링 요가 수업이었다. 잔뜩 굳어있는 관절과 근육을 부드럽게 풀어주고 몸과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 목적으로, 그 자세에서 깊게 호흡하면서 머무른다. 


아프다, 너무너무너무 아팠다. 고관절을 풀어주는 자세를 취하고 머무는데 골반이 잔뜩 비틀어졌는지 아팠다. 

무엇보다 선생님 목소리와 멘트가 조금 특이했다. 어떤 개그우먼이 하는 것처럼 귀여운 코맹맹이 소리에 말 끝마다 응~!이라는 소리를 붙이셨다. "자세에서 머물러여~응! 그렇지 그렇게~응! 다섯 호흡 해볼게여~ 응!" 발랄하고 귀여운 멘트에 정신이 팔려 집중이 안되던 찰나, 


"아니아니 이렇게~응! 아이구... 이게 안되네...? 응~ 그냥 계속해여~응!"


나도 모르게 교정받고 있는 사람을 쳐다봤는데, 빨개진 얼굴을 보고 고개를 얼른 숙이고 숫자만 세었다. 여덟....아홉....열...!



가는 길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분명 수업 듣는 회원들도 많은 걸 보면 누군가에겐 좋은 선생님일 것 같은데, 우리와는 스타일이 안 맞았다.


"선생님 너무 애기 같이 말씀하시더라..."

"저도 집중이 하나도 안 됐어요... 동작 자체는 시원하고 좋은데..." 



*나중에 깨달았지만, 요가 지도자들이 수업에 온 모든 사람을 항상 만족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와 안 맞더라도 어떤 이에게는 최고의 선생님일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요가 수련 스타일도 각자에게 맞는 것이 다르므로 서로 함께 수련하기에 맞는 에너지들을 찾아가면 된다. 


선생님들도 마찬가지로 모두에게 칭찬을 받지는 못해도 그 수업 안에서 확실한 목표를 가지고 몸에 대한 이해, 그리고 해당 수업 회원들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수업을 진행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지 못한다면, 자신을 돌아보고 노력과 공부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



모르는 사이에 힐링 뜻이 바꼈나봐!




그리고 화요일. 등록한지 일주일 정도 된 것 같다. 퇴근 시간이 되어 또 눈치 게임이 시작되었다. 그래도 돈을 냈으니 수업을 들으러 갈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주임님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저... 오늘 일이 많아서 못 갈 것 같아요."

"아... 그러세요? 음... 그럼 저도 안 갈래요!" 



아마 모두가 예상하듯이 남은 3주치는 역시나 요가계의 발전을 위해 기부하고...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닌 우리의 게으름 탓으로, 우리는 일주일 만에 퇴근 후 한 잔 하는 삶으로 돌아갔다. 


두통약은 여전히 책상 서랍에 잔뜩 넣어둔 채로.




- 4탄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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