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슨씨, 나가서 뛰어 놀자!

 

 엄마 친구 중에 도서관에서 일하는 분이 계셨다. 그 덕에 엄마를 따라 도서관에 자주 갈 수 있었다. 엄마가 글라라 아줌마와 '커피 한 잔'을 하러 간 사이 실컷 책을 읽을 수 있었다. 나는 책 읽는 게 참 좋았다. 책 냄새도 좋았고 어린이실의 딱딱한 소파에 앉아있다보면 내가 마치 굉장히 똑똑한 사람이 된 듯한 생각도 들었다. 제일 좋아했던 책은 '나르니아 나라 이야기'였다. [사자와 마녀와 옷장]이라는 책부터 여러 권으로 된 시리즈였는데, 영화가 되어 유명해진 '나니아 이야기'의 어린이 판이기도 하다.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책에 푹 빠져있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 책을 읽니마니 엄마와 입씨름을 벌이는 아이들을 보며 빙긋 웃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의 독서 인생에 가장 큰 전환점이 찾아왔다. 바로 중학생 이상만 들어갈 수 있는 일반 열람실에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검색을 해서 찾았던 책이 2층에 있었던가, 이유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무튼 초등학생의 신분으로 일반 열람실에 출입하는 대단한 특혜(?)를 입게 되었다. 잿빛 카펫이 깔려있고 키 큰 책 장들이 줄지어 서있었다. 지금이나 그 때나 키는 별로 차이가 없는데도 그 때는 책장이 너무 커보여서 꼭 책의 나라에 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처음 뽑아든 책은 애거서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였다. 기억 속에서는 제목이 [10개의 인디언 인형]이었던 것 같은데 나중에 다시 그 책을 접했을 때의 제목은 전자였다. 아무튼 초등학생이 계속 있기엔 곤란해서였는지 엄마와 아줌마는 나를 비어있는 회의실에 넣어주고는 '커피 한 잔'을 하러 가셨다. 아무도 없는 회의실에서 추리 소설을 읽는 기분은 최고였다. 그렇게 글씨가 작은 책은 처음이었지만 한 시도 눈을 떼지 못하고 다 읽어버렸다. 다 읽고 멍하니 앉아있다가 자세를 고치려 몸을 틀다가 접이식 의자의 차가운 쇠에 손이 닿았다. 그 순간 빈 공간에 혼자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고는 서둘러 밖으로 뛰어 나왔다. 나온 후에도 여운은 가시지 않았다.

 

 그 날 이후 빨간 표지에 다른 책보다 크기가 작아서 눈에 잘 띄었던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을 다 읽고, 국제통역사인 최정화 씨의 책도 몇 번이나 읽었던 것 같다. 펜팔 책을 빌리는 경우가 많아서였는지 주로 외국에서 공부를 하거나 성공한 사람들의 에세이를 많이 접했다. 그 영향으로 중학교에 갔을 때는 영국으로 유학 보내달라고 떼쓰는 나를 말리느라 엄마가 고생하시기도 했다. 

 

 그 곳에서 꿈을 키우기도 하고 또 다른 세상을 상상하기도 했다. 도서관에 가는 것은 항상 설렜다. 지금은 토익책이니 인적성 책을 넣은 가방의 무게만큼 가는 발걸음이 무거워지는 곳이 되긴 했지만, 아직도 도서관에 대한 낭만은 있다. 여름에는 은행에 비하면 시시한 에어컨 바람이 불고, 겨울에는 손끝이 조금 시릴 정도의 실내에서 묵은 책 냄새를 한 번 훅 빨아들인다. 책장을 넘기거나 속삭이는 소리 외에는 조용해서 나도 모르게 까치발로 걷게 되는 공간. 아무 책이나 한 권, 마음에 드는 대로 뽑아서 창틀이나 히터 위에 걸터앉아, 편한 바지를 입었을 때는 그냥 카펫 위에 양반다리를 하고서 책장을 넘긴다.

 

 가끔은 내게 도서관에서의 여유로운 오후를 선물하고 싶다.

 

 



이글은 "인터파크도서"에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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