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슨씨, 나가서 뛰어 놀자!


 내가 중학교에 다닐 때, 대학생이던 사촌 언니와 친구가 전국 무전 여행 중에 들른 적이 있다. 하나로 질끈 묶은 머리에 커다란 배낭, 아르바이트를 하고 헬스를 해서 살이 많이 빠졌다고 했다. 통통했던 예전의 언니와 달라보여서 조금 낯설었다. 


 고 3 때 수시 시험을 치르느라고 서울로 올라갔다. 언니는 그 때 같이 우리 집에 왔던 친구가 일하는 '아웃백'에 나를 데려가서 둘이 먹기엔 너무 많은 양의 음식을 시켜주었다. 돈 많은 애들만 간다고 생각했던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배가 터지게 먹고도 음식이 남아서 포장까지 해왔다. 엄청난 부자가 된 느낌이었다. 짙은 화장에 높은 구두, 화려해진 언니의 모습은 또 다른 사람같은 느낌을 주었지만 그냥 언니와 서울 구경을 하는 것이 좋았다. 


 실컷 구경을 하고 언니 집으로 갔다. 고모와 고모부께 인사를 드리고 언니 방으로 들어갔다. 


 아, 여전했다. 

 방 한 면을 가득 메운 책장들은 더이상 신문지 한 장 더 꽂을 자리도 없이 꾸역꾸역 책들을 물고 있었다. 직접 그린 일러스트가 덕지덕지 붙어 있는 컴퓨터 책상과 딱 한 사람 누울 자리만 빼놓고는 온통 책이었다. 가로로 쌓여있는 책, 내 키 반만큼 쌓인 더미들. 언젠가 언니는 이 방에 누워있다가 어느 날 책들이 쏟아져 깔리는 상상을 하기도 한다고 했었다. 등록금을 버느라 한 시도 아르바이트를 쉬어본 적이 없다는 언니는 여윳돈이 생기면 대부분 책을 산다고 했다. 책 더미에서는 확고한 취향보다는 그냥 책을 읽는 행위 자체를 즐기는 언니가 느껴졌다. 그 중에는 만화책도 섞여 있어서 언니가 음악을 들으면서 다른 일을 하는 동안 나는 주로 만화책을 읽었다. 별로 정리되어있지 않은 방이었지만 그 방에 들어서면 행복감까지 느껴졌다. 그 다음 날에는 언니와 서점에 가서 언니가 추천해주는 아멜리 노통브와 파울로 코엘료의 책을 샀다.


 지금 언니는 취직을 했다. 그림 공부를 하고 싶어했지만, 인연이 닿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렇지만 뜨개질을 취미로 하면서 예술적인 감각을 발휘하고 있는 것 같다. 언니들이 독립하자, 고모집은 이사를 갔다. 빈 방 하나는 언니의 책들로 가득차 있었다. 언니가 그 곳에 살 때와는 달리 책장에 깔끔히 정리가 되어있고, 가끔 빈 공간이 발견되기도 했다. 고모가 언니 몰래 몇 박스 버렸다고 하셨다. 아, 나한테 버리지... 진심섞인 탄성을 뱉었다. 


 언니는 지금 사는 곳에서도 여전히 책을 많이 읽는 것 같다. 나중에 언니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도 언니의 책을 위한 공간은 계속 남아있으면 좋겠다. 언니만의 서재가 완성되는 날이 얼른 오면 좋겠다. 책에 깔려 죽지는 않아도 가끔씩 행복감이 벅차오르도록.  



이글은 "인터파크도서"에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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